11장 경험에 의한 믿음의 변화

1. 경험만이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불확실성과 가능성을 표현하는 확률은 여러 철학자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경험주의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간 이해력에 대한 탐구>에서

 

확률에 대한 그의 사상을 펼치면서 어떤 가능성이 다른 가능성보다 더 크다고 믿을 수단은 곧 경험뿐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흄은 '종교적 기적'에 대해 여지없이 의문을 드러냈다.

 

예수의 재림을 목격하는 '경험'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인간은 한번 죽으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한다는 상식과 비교하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다.

 

기적의 가능성은 죽으면 끝이라는 상식적인 경험의 가능성에 비해 티끌보다 작으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흄의 경험주의 철학은 당대는 물론 현대 과학자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2. 베이즈의 사고실험

 

모두 그랬던 것은 아니다.

 

흄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영국의 목사 토머스 베이즈는 흄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막연하고 모호한 '가능성'을 확률이라는 숫자로 표현하려고 했다.

 

논리학과 수학에 조예가 깊었던 베이즈가 고안한 간단한 사고실험을 이해하기 쉽도록 생각해보자.

 

이안이와 시연이는 학교에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학생들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시험을 보았는데 기출문제와는 매우 다른 시험문제가 출제되었다.

 

일등을 도맡아하던 이안이는 시험을 망쳤다며 울상인데, 시연이에게 절대 점수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안이의 점수가 너무 궁금한 시연이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시연이가 임의의 점수를 제시하면 이안이가 그보다 높은지 낮은지만 말해주는 것이다.

 

시연이가 30점을 제시하고, 이안이가 그보다 낮다고 대답한다면 정말 시험을 망쳤다는, 불가능할 것만 같은 사건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만약 시연이가 여러번 물어볼 수 있다면 이안이의 점수에 대한 시연이의 추축은 더욱더 정확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재림이나 인간의 환생처럼 불가능할 것 같은 사건도 다양한 증언이 더해지면 실제로 벌어졌을 확률은 점점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환생할 가능성이 매우 작다는 데 기초한 흄의 논증이 잘못되었다고 베이즈는 생각했다.

 

 

3. 베이즈 정리

 

눈물을 흘리는 성모마리아상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이 기적을 목격했다고 증언한다. 정말 기적일까?

 

정말 종교적 기적이라면 목격자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굳이 확률로 표현하면 100%이다.

 

베이즈가 정량화하려던 확률은 조금 다르다.

 

수많은 목격자가 있을 때, 정말 종교적 기적이 일어났을 확률이다.

 

종교적 기적이 일어났든 그렇지 않든 과거 일이지만 그 진위에 대한 우리의 무지 정도를 확률로 표현하는 것이다.

 

두 확률은 조건과 결과가 뒤바뀌어 있다.

 

'종교적 기적이 행해졌을 때, 기적을 목격할 확률 = P(목격|기적)'

 

'기적을 목격했을 때, 진짜 종교적 기적일 확률 = P(기적|목격)'

 

이처럼 조건을 두었을 경우 결과에 대한 확률을 조건부 확률이라고 부른다.

 

위 수식에서 'P'는 확률을 뜻하며 이 수식은 뒤에서부터 읽는 것이 편하다.

 

즉 P(결과|조건)은 어떤 조건 아래에서 결과의 확률이다.

 

이 두 확률은 표현뿐만 아니라 그 값도 다르다.

 

첫번째 확률 P(목격|기적)이 100%라고 해서 두번째 확률 P(기적|목격)도 100%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기적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있어도 그 기적 자체가 사기일 경우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이즈는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다른 이 두 확률을 엮는 방법을 간단한 식으로 표현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베이즈의 법칙'이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P(A|B) = \frac{P(B|A)P(A)}{P(B)}$

 

A와 B의 위치에 '기적'과 '목격'을 넣어보면 조건과 결과가 뒤바뀐 두 조건부 확률을 연결할 수 있는 수식이 된다.

 

조건과 결과의 순서가 다른 두 조건부 확률을 엮는 베이즈의 방법은 불확실성을 다스리고 추측을 더욱 정교하게 하는 다양한 통계 방법론으로 발전했다.

 

의학이라면 질병이 있을 때 어떤 증상이 발현될 확률을 뒤집어 그 증상이 있을 때 질병이 있을 확률을 계산하는 식이다.

 

전쟁에서는 적군의 위치에 대한 예측, 뇌과학에서는 감각에 따른 뇌 반응, 공학에서는 자율주행차의 주변 환경 감지 등

 

통계가 응용되는 모든 분야에 베이즈의 법칙이 쓰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대표적인 경험주의자인 흄을 반박하는 베이즈의 논증 역시 반복되는 관측이나 경험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적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반복적인 관측, 경험, 데이터는 논증에 필수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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