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지동설과 천동설, 귀무가설과 대립가설

1. 일상 속의 통계적 가설검정

 

두 가설이 충돌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흡연이 암과 무관하다는 가설과 원인이라는 가설은 지난 20세기 의학계 내부뿐만 아니라 법정까지 넘나들며

 

충돌한 큰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판매하는 모든 의약품을 심사한다.

 

어느 제약회사의 신약 A에 대한 식약처의 가설은 '약 A는 효과가 없다'이다.

 

제약회사는 효과가 있음을 증명해야한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형사재판의 모든 피의자는 증명되기 전에는 죄가 없다.

 

검사는 유죄를 증명해야 한다.

 

무죄와 유죄 두 가설이 충돌한다.

 

중세 유럽 과학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지구중심설은 지동설의 선구자인 코페르니쿠스와 '그래도 지구는 돈다'로 유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의해 흔들린다.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확고한 사실로 받아들여진 천동설이기에 지동설의 등장은 말 그대로 혁명적이었다.

 

천동설은 어떻게 1000년이 넘은 시간 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을까?

 

 

2.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새로운 가설을 믿는다

 

신이 지구를 중심에 두었다고 믿는 교회의 영향력 때문만은 아니다.

 

천동설로도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매우 복잡할 뿐이다.

 

천동설이 사실임을 가정할 때, 화성의 궤도는 나름의 규칙성을 보이지만, 복잡한 나선 형태를 보인다.

 

 

 

하지만 지동설이 설명하는 행성의 움직임은 간단하다.

 

지구를 포함한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린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사람들은 천동설만으로도 충분했다.

 

언제 해와 달이 떠오를지, 내일 저녁 10시에 목성이 어디에서 관측될지 천체의 움직임을 성공적으로 예측하면서 살았다.

 

새로운 가설인 지동설은 굳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새로운 가설을 '대안가설' 또는 '대립가설'이라 부른다.

 

그와 충돌하는 기존의 천동설은 '귀무가설'이다.

 

다시 무(無)로 돌아가는,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가설이라는 뜻이다.

 

두 가설 중 하나는 누군가 새롭게 주장하는 가설이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지동설)', '약 A가 효과 있다.', '피의자는 유죄이다.' 등 대립가설이 곧 주장하려는 가설이다.

 

다른 하나는 귀무가설이다. '지구가 중심이다(천동설)', '약 A는 효과가 없다.', '피의자는 무죄이다.' 등

 

귀무가설을 선택하는 것은 그냥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원래 믿고 있었고, 약 A는 만들지 않은 것과 같고 피의자는 유죄선고를 받기 전에는 무죄일 뿐이다.

 

법정에서도 과학에서도 귀무가설이 기준이다.

 

그래서 귀무가설이 사실임을 가정하고 논리를 전개한다.

 

천동설이 사실이라면 행성의 궤도는 복잡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지만, 목성의 위성 유로파의 궤도는 설명하기 어렵다.

 

유로파의 궤도는 천동설로는 설명되지 않는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귀무가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데이터가 매우 많이 쌓여야 귀무가설인 천동설을 무너뜨릴 수 있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결백한 피의자에게 유죄 선고를 하는 매우 중대한 오류를 피하고자 피의자는 증명되기 전까지 무죄이다.

 

유죄를 증명하기 위해 검사는 증거를 제시해야한다.

 

자신의 과학적 가설을 증명하려는 과학자는 귀무가설이 아닌 대립가설을 지지하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과학자가 수집한 데이터가 귀무가설로도 충분히 설명된다면 귀무가설을 부정하기 어렵다.

 

귀무가설과 모순되는 데이터가 쌓일 때 비로소 대립가설을 채택할 수 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시기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시대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후였다.

 

당시 뉴턴의 역학은 정설로 받아들여졌는데, 천동설에서 주장하는 행성의 움직임은 뉴턴의 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데이터(행성의 움직임)가 귀무가설(천동설)을 확실히 부정했을 때, 비로소 천동설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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